돌발진. 아이가 돌발진이 왔다. 일주일을 꼬박 고생한 것 같다. 첫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다양한 처음을 경험하고 있지만, 돌발진은 그중 난이도가 중(中) 정도는 되는 이벤트인 것 같다. 우선 돌발진을 찾아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들이 나온다.
돌발진의 정의
돌발진은 제6형 인헤르페스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해 유아기에 발생하는 발열과 발진을 말한다. 95% 이상이 생후 6~24개월 미만에서 발생하며 그중 6~15개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돌발진은 섭씨 37.9~40도 사이의 고열이 발생하는데 고열 외에는 경미한 감기 증상(콧물, 충혈 등)도 있을 수 있다. 발열은 보통 38~40도의 고열이 3~5일 지속되며 발열 증상이 완화되면 전신에 빨간 장밋빛의 피부 발진이 발생한다.
헤르페스는 전 세계인의 90%가 감염된 바이러스라고 알려져 있다. 부모 자식 간의 사소한 접촉으로도 감염되기 때문에 감염을 피할 수는 없다. 특히 국물요리를 수저로 공유하는 우리나라는 더욱더 감염이 쉽다. 아이가 귀엽다며 뽀뽀를 거리낌 없이 하고 할머니들이 손주들 먹을 김치 반찬을 입으로 빨아 먹여주던 시기엔 더욱더 쉽게 감염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 역시 이를 피하기 위해 이유식부터 유아식까지 뜨거울 때도 절대 입으로 불어주지 않았고, 선풍기로 음식을 식혀주었다. 그리고 입뽀뽀 역시 금지였다. 하지만 돌발진을 피할 수는 없었다.
돌발진 증상의 시작. 첫날
고열이 발생한 첫날, 낮까지 무던하게 잘 놀았던 아이가 저녁 무렵부터 칭얼대기 시작했다. 얼굴과 귀가 달아올랐다. 열을 제보자 39도까지 치솟아 오른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당연히 감기를 걸렸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을 가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일단 재우려 했으나 새벽 내내 열이 도통 내리지 않았다. 고열이 지속되자 부루펜 계열의 해열제를 먹였다. 하지만 열이 내리지 않았다. 처음 겪어보는 현상이라 더 걱정이 됐다. 보통의 감기 떼는 해열제를 복용하면 금방 정상체온으로 돌아왔었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 걱정이 됐고, 결국엔 옷도 다 벗기고 시원하게 한 후 옆에서 매시간 체온을 체크하며 밤을 겨우 넘겼다.
돌발진에 대한 의심, 고열의 지속
밤새 이어지던 고열이 아침까지 지속됐다. 39도는 기본이었고 시원하게 해주지 않으면 40도도 금방 올라갔다. 아침에 빨리 병원으로 달려갔고, 의사는 고열이 나니 코로나 + 독감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음성이었다. 의사는 일반 감기 혹은 독감, 혹은 코로나로 생각을 한 것 같다. 항생제와 기타 감기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뭐 당연히 집으로 돌아와도 고열에 대한 해결책은 없었다. 해열제를 먹이고 옷을 홀라당 벗겨주고, 물수건 등을 이용하여 몸을 최대한 시원하게 해주는 수밖에는 더 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낮에는 조금 고열이 덜했다. 하지만 밤이 되니 어김없이 또다시 열이 치솟았다. 당연히 아이 옆에서 자며 창문도 열어보고, 물수건도 쓰고 해열제도 먹였다.
돌발진. 가장 주의해야 했던 점 그리고 가장 효과가 좋았던 점
효과가 좋았던 해열제의 교차복용
가장 효과가 좋았던 건 해열제의 교차복용이다. 그러니까 해열제는 총 2가지 종류의 약물로 나뉘는데 하나는 타이레놀 계열이고, 하나는 부루펜 계열이다. 흔히 이렇게 말하더라. 뭐 더 정확한 성분을 육아하는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
해열제는 보통 4~6시간에 한번 먹인다. 근데 만약에 열이 안 내린다면? 똑같은 해열제를 4~6시간 뒤에 먹일 생각에 전전긍긍할 필요 없이 다른 종류의 약물 성분을 가진 해열제를 2시간 뒤에 먹이면 효과가 좋다. 이것을 교차 복용이라고 한다. 교차복용에 대한 것도 그전에는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왜냐면 1종류의 해열제만 먹여도 열이 잘 내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속되던 고열은 3일 차에 접어들고부터 약간의 희망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효과가 좋았던 미지근한 물수건
옷을 얇게 입히고, 공기를 차갑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아주는 것이 효과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공기를 차갑게 하면 열은 잘 안 내리고 춥기만 하다. 어른도 춥기 때문에 덩달아 고생한다. 그런데 물수건을 적셔 온몸을 닦아주면 아이만 온도를 조절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어른이 덜 고생한다. 그리고 효과도 좋은데, 보통 인간이 체온 조절을 할 때 땀을 흘린다. 이 땀은 마르면서 체온을 낮춰준다. 이런 효과를 인위적으로 내주는 것이 물수건으로 닦는 것이다. 얼마나 효과가 있겠어?라고 생각했지만, 효과가 생각보다 탁월하다. 찬공기를 맞는 것보다 훨씬 좋다.
가장 주의해야 했던 순간, 새벽의 온도변화
돌이켜보면 이때가 가장 무서웠던 것 같다. 4일째 접어드는 날 저녁 전부터 아이의 열이 잡히기 시작했다. 아이의 컨디션이 점점 좋아 보였고, 열이 내리기 시작하자 정말 순식간에(2~30분 만에) 정상체온에 가깝게 내려갔다. 이제는 끝났나 보구나. 싶었다. 여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그럼 아이 방에 보일러를 틀어야 하나? 잠옷을 조금 더 두꺼운 것으로 바꿔줘야 하나? 겨울이라 새벽엔 쌀쌀했기 때문에 정상체온으로 돌아온다면 보일러를 당연히 들어야 했다. 다만 방의 온도는 한번 올리면 쉽게 떨어지지 않으니, 결국에는 옷을 좀 더 두껍게 입히고 이불을 덮어주는 선택을 했다. 이후 새벽 2~3시까지 이불을 덮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체온을 유지했다. 너무나도 기뻤고, 그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내 방에서 좀 자도 될까?라는 고민을 하던 차였다. (분리 수면 중이라 아이 방이 아닌 내 방에 가서 자려고 했다.) 근데 그때 약간의 무서운 상상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오늘도 아이 옆에서 자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누운 뒤 20분 정도 지날 무렵 무심코 아이의 체온을 재보니, 40도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때 정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순식간에 체온이 오른다고?! 얼른 이불을 치우고, 옷도 벗기고 깨워서 해열제를 먹이고 물수건으로 연신 닦아줬다. 그래도 따뜻한 이불속에서 한번 오른 체온은 쉽게 안 떨어졌다. 만약 내가 내방으로 가서 깊게 잠에 들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이도 돌발진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힘없이 잠을 자던 터라 제대로 울기나 했을까? 돌이켜보면 그날 밤이 가장 아찔한 순간이었다.
돌발진은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의 체온 변화가 급격하다. 열이 떨어지는 것도, 오르는 것도 10~30분 내에 순식간에 변한다. 그러니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다. 증상이 완화되는 듯한 시기쯤 되면 순식간에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이때 조금은 힘들더라도 끊임없이 아이의 체온을 의심해야 한다. 언제까지 의심해야 하냐면, 바로 열꽃이 온몸에 번질 때까지다. 돌발진의 마지막 특징은 무조건 열꽃이니 말이다.
증상의 완화, 돌발진에 대한 확신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감기나 코로나일 확률도 어느 정도 염려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돌발진인지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의사 역시 확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일 차 아침부터 아이의 몸에 조그마한 붉은 반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돌토돌한 작은 크기의 반점. 그때부터 우리 아이가 겪은 병이 돌발진이라는 확신을 했다.
끝내며
아이는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가리지 않고 평소와는 다른 자극에 성장하는 것 같다. 재미있게 놀러 간 후에도, 크게 앓은 후에도 이후에 보면 뭔가는 다르게 부쩍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번 돌발진 이후에도 뭔가 아이가 더 큰 것 같은 느낌이다. 말도 좀 더 풍부해졌고, 행동도 약간은 달라졌다. 일주일간 고생을 하긴 했지만 언젠가는 겪어야 했을 숙제를 끝내었다는 생각에 홀가분하기도 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기에, 더 많이 아플 것이고 때로는 다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부모도 자식도 서로가 아픈 만큼 성장하는 것이 육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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