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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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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약간 불편한 단어.

월요일이다.

 

주말을 보내고 난 다음날 월요일은 유독 힘이 들고, 예민해진다.

오늘도 역시 아침 출근길에서부터 온갖 번뇌가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회생활을 한지 벌써 10년을 넘었고, 현재 회사에만 근무한지도 5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근 5년간 매일이 출근과 퇴근, 주말의 패턴으로 무엇하나 변한 것 없이 무한하게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함께한 나만 많이 지쳐버린 느낌이다.

 

지금의 나는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

유럽이든 동남아든 남들 가는 해외여행 거른 적 없고,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절약하자며 크게 결제를 망설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가정도 꾸렸고 와이프와 맞벌이를 하기에 모자라지도 않고 별 다툼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는 가슴 한편에 불편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

내가 4,50대가 되어도 나는 과연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까.

이대로 인생을 살아가도 괜찮은가.라는 막연한 불안함을 느낀다.

결혼으로 인한 책임감 때문일 수도 있고, 아이를 가져야 하기에 경제적으로 생길지 모르는 부담스러움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게 아직은 크게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 산책하다 마주치는 폐지를 줍는 연로하신 분들이 보이면,

극단적으로 나의 노후가 저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란 생각을 한다.

살아보니 내가 느낀 세상은 어떻게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이렇다 할 개연성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점심은 건물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했다.

식사를 마친 어떤 40대 중반의 중년인이 밥을 다 먹고 식판을 들고일어나다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갑자기 일어나서 현기증이 난 건지, 아니면 심혈관 질환이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중심을 잡으려 계속 뒷걸음질을 쳤고 그러다 보니 속도가 더욱 붙어, 결국 뒷머리를 땅바닥에 세게 부딪혀 바닥에 피를 뿌리고 나서야 멈췄다. 결국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식당은 아수라장이 됐다.

그리고 생각보다 긴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구급차가 와서 그를 싣고 갔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우연찮게 그 모든 과정을 목격한 나는 충격에 밥을 넘길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를 여러 생각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식당 한편에 쓰러져 있는 그를 중심으로 여럿이 모여있었고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다소 먼 자리에 있던 누군가는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치열한 일상 중 하루였기에 묵묵히 식판의 밥을 비워내고 자리를 벗어가는 것이 소름 끼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긴 모두가 호들갑을 떨어도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나 역시 그간 공감하지 못해 무심코 지나친 수많은 현실들이 있으나,

단지 오늘은 내가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하게 된 것이 다를 뿐이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것의 계기이기도 하다.

 

그 중년인 역시 본인이 월요일 점심을 먹고 일어나다가 쓰러질 줄 몰랐겠지.

그 사람이 그 이후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이 뭔가 심란해졌다.

아등바등 살다가도 정말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구나.

 

정말 인생은 허투루 살기엔 정말 짧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월급 중독이 주는 안정감이 언젠가 나에게 큰 독으로 작용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한테 가장 필요한 건 절박함 일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이 꽤나 많아지는 월요일이다.

 

영화 "빠삐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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